응답하라 2008? 촛불이 응답하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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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다시 켜졌지만, 대중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육중한 ‘명박산성’이 광장을 가로막고, 광화문에만 백만 명 넘는 인파가 촛불을 들고 몰려나왔던 지난 2008년 여름에 비하면, 금년 여름의 광화문은 그저 시내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여느 집회 현장을 보는 것처럼 한산하다. 일부 진보진영 인사들은 2013년 상황이 2008년보다 더욱 엄중한 상황임을 부르짖고 있으나, 대중들의 반응은 아직 냉담한 편이다.

지난 5년 사이에 온라인 공론장의 지형이 많이 바뀌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온라인 상의 최대 커뮤니티였던 DC인사이드가 퇴조하면서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와 오늘의유머(오유)가 대표 커뮤니티사이트의 자웅을 겨루고 있고, 범 진보세력의 사랑방 역할을 하던 다음 아고라는 트위터에 그 자리를 내어 주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2000년대 들어 진보의 앞마당으로 여겨져 왔던 온라인 공간에 보수 성향의 목소리들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지난해 총선과 대선이라는 큰 정치 이벤트를 거쳐오는 과정에서, 보수 성향의 네티즌들은 진보 성향의 네티즌들을 압도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밀리지도 않았다. 보수적 정치성향을 밝히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진보의 압도적인 우위였던 2008년 촛불시위 때라면 상상할 수 없을 일이었다.

온라인은 오프라인상의 인간 관계와 커뮤니케이션을 모방한 가상의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형성된 대중의 프레임은 오프라인에 그대로 반영되기도 한다. 고로 오프라인 상의 냉담한 시위현장을 만든 것은 어쩌면 온라인 상에서 형성된 저항담론의 성격 때문일지도 모른다.

2008년과 2013년, 진보의 저항담론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필자는 트리움 기술진의 도움을 받아 포털사이트 다음(daum)의 아고라에서 지난 2008년 5월 1일부터 8월 31일 사이에 ‘쇠고기’키워드를 포함하여 작성된 글들과, 금년 4월 1일부터 7월 4일사이에 ‘국정원’ 키워드를 포함해 작성된 글들을 수집하여, 그 중에서 조회수 상위 50위 이내에 드는 글들을 따로 추려내어 분석하였다.

표 1. 다음 아고라 조회수 상위 50개 글들의 조회수 및 추천수 비교.  2008년에 비해 2013년의 감소세가 완연하다  (2008: 2008년 5월 1일~8월 31일, 2013: 2013년 4월 1일~7월 4일)

다음 아고라 조회수 상위 50개 글들의 조회수 및 추천수 비교.
2008년에 비해 2013년의 감소세가 완연하다
(2008: 2008년 5월 1일~8월 31일, 2013: 2013년 4월 1일~7월 4일)

그 결과, 2008년 글들에 비해 2013년의 총 조회수는 423,040건 감소(-57.8%)하였고, 평균 조회수도 8,481건 감소하였다. 전체 추천수는 42,490건 감소(-67.7%)하고 평균 추천수도 846건 감소하는 등, 다음 아고라에서의 글 조회 및 추천 활동이 60% 정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활동성의 감소는 화력의 감소로 직결될 수 있다.

하지만 트위터 등의 새로운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다음 아고라에서 활동하던 사람들 이 이들 소셜미디어 플랫폼으로 활동영역을 옮긴 것을 감안하면, 다음 아고라에서의 활동성 감소가 2013년 촛불시위 흥행 실패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온라인 상에 앉아서 관망하던 사람들로 하여금 촛불을 들고 밖으로 나가게 하는 원동력은 결국 온라인 저항담론을 구성하는 프레임과 메시지의 호소력에서 나온다. 의미망분석(Semantic Network Analysis)을 통해 2008년과 2013년의 담론 프레임을 비교 분석해 봐야 할 필요가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슈의 분산: 불분명한 해법과 목적의식

2008년도 다음 아고라 조회수 상위 50개 글의 의미망 지도. ‘미국산쇠고기’ 키워드그룹을 중심으로하여, 촛불집회의 당위(‘촛불집회’ / ‘주권’ 그룹)와 비판 대상에 대한 성토(‘조중동’ / ‘검찰’ / ‘이명박’ 그룹)로 담론이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다

2008년도 다음 아고라 조회수 상위 50개 글의 의미망 지도. ‘미국산쇠고기’ 키워드그룹을 중심으로하여, 촛불집회의 당위(‘촛불집회’ / ‘주권’ 그룹)와 비판 대상에 대한 성토(‘조중동’ / ‘검찰’ / ‘이명박’ 그룹)로 담론이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다

2008년과 2013년의 저항담론을 비교해 보면 답이 명확해진다. 그림 1은 2008년 다음 아고라에 작성된 미국산쇠고기 관련 글들의 의미망 지도이다. 각 이슈 그룹을 가운데에서 묶어내고 있는 것은 ‘미국산쇠고기’ 그룹 (‘광우병’, ‘우려’, ‘위험’, 미국’, ‘재협상’, ‘보도’, ‘항의’, ‘왜곡’)이다. 이는 당시 전국에서 대규모의 촛불시위가 일어나게 된 핵심적인 문제상황이기도 하다.

중심의 ‘미국산쇠고기’ 그룹을 둘러싼 다섯 개 키워드 그룹 중, ‘주권’ 그룹은 촛불시위의 당위를 대변하는 그룹이다. ‘민족공동체’를 수호해야 하고 ‘민주주의’와 국민 ‘주권’을 보호해야 할 ‘통치자’가 역할을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촛불집회’에 ‘참여’(‘촛불집회’ 그룹)해 궁극적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을 ‘퇴진’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아간다(‘이명박’ 그룹). 아울러 현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조중동’과 ‘검찰’에 대한 비판도 나타난다. 특히 ‘조중동’ 그룹을 비판하는 주된 이유는 ‘소비자’들의 ‘미국산쇠고기’ ‘불매운동’을 ‘왜곡보도’하는 등 ‘탄압’하기 때문이다.

2013년도 다음 아고라 조회수 상위 50개 글의 의미망 지도. ‘국정원’ 대선개입에 대한 ‘국정조사’ 이슈가 가운데에 있으나, NLL 대화록 ‘공개’ 관련 키워드 그룹과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판, 언론과 수사기관의 대 ‘국민’ 사기에 대한 분노, 그리고 ‘촛불시위’ 촉구가 서로 뒤섞여 논점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고 있다

2013년도 다음 아고라 조회수 상위 50개 글의 의미망 지도. ‘국정원’ 대선개입에 대한 ‘국정조사’ 이슈가 가운데에 있으나, NLL 대화록 ‘공개’ 관련 키워드 그룹과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판, 언론과 수사기관의 대 ‘국민’ 사기에 대한 분노, 그리고 ‘촛불시위’ 촉구가 서로 뒤섞여 논점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고 있다

반면 2013년 다음 아고라에 작성된 미국산쇠고기 관련 글들의 의미망 지도를 살펴보면 양상이 사뭇 다르다. 우선 논점이 분산되어 있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에 대한 비판과 ‘국정조사’ 요구를 담은 키워드 그룹이 중심부에 있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 논란(‘새누리당’ 그룹)과, 이를 ‘공개’해버린 정부 여당에 대한 비판을 담은 키워드그룹(‘공개’ 그룹)이 나타난다. ‘국민’은 ‘분노’하고 있지만, 그 이유가 ‘국정원’ 때문인지, ‘회의록’ ‘공개’인지 명확히 정리되지 않는다. ‘촛불시위’와 ‘시국선언’은 있지만, 최종 해법으로 논의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사과’와,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 그리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구속’ 등으로 분산된다.

2008년 아고라의 대중의 문제인식과 해법은 명확했다. 미국산 쇠고기 협상 실패의 책임을 지고 이명박 대통령이 퇴진하라는 것이었다(그림 1 참조). 정책적 판단을 근거로 정권 퇴진을 요구한 것은 다소 과한 면이 있으나, 어찌 되었든 간에 민주주의와 민족공동체 수호라는 명확한 대의명분이 있었다.

반면 2013년 아고라 대중은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합의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해법도 분산될 수밖에 없다(그림 2 참조). 특히 NLL 관련 이슈가 제기되면서, 그리고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과 박근혜 대통령과의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2008년의 정권퇴진 요구와 같은, 분명하고 명확한 공통의 미션이 만들어지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합의의 정도가 낮고 명확하지 않은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다수 대중이 길거리에 나오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내 삶에 와 닿지 않는 이야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08년 촛불시위 전개 양상을 보면, 초반에 PD수첩 보도 등을 통해 이슈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후 10대 청소년들과 운동가들을 중심으로 집회가 시작되었고, 이윽고 486세대가 경찰의 과잉진압에 맞닥뜨리게 되면서 이슈의 심각성이 더욱 부각되었으며, 마지막으로 가정 주부와 일반 대학생들, 가족단위의 참가자들이 합류하면서 일종의 ‘축제’ 상황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부분은 가정 주부나 가족 단위의 참가자들이 ‘축제’를 즐기러 나오게 된 대목이다. 2008년 아고라 담론(그림 1 참조)을 보면, 이들이 거리로 나오게 된 이유는 ‘소비자’ ‘불매운동’에 대한 ‘조중동’과 ‘이명박’ ‘정권’의 ‘왜곡’ 시도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미국산쇠고기’ ‘불매운동’에 공감하게 된 원인은 ‘미국산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2008년과 2013년도 다음 아고라 조회수 상위 50개 글에서 도출된 핵심 키워드. 2008년에는 주요 토픽과 핵심 관심사에서 ‘소비자’ 관련 키워드가 도출되고 있는 반면, 2013년에는 정치적 논란과 관련된 키워드들만 도출되고 있다

2008년과 2013년도 다음 아고라 조회수 상위 50개 글에서 도출된 핵심 키워드.
2008년에는 주요 토픽과 핵심 관심사에서 ‘소비자’ 관련 키워드가 도출되고 있는 반면, 2013년에는 정치적 논란과 관련된 키워드들만 도출되고 있다

이러한 점은 표 2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소비자’ 키워드가 2008년의 주요토픽과 핵심관심사 키워드로 도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요토픽은 “교차로”처럼 어떤 이슈에서 다른 이슈로 넘어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는 키워드로, 다양한 이슈들 사이에 걸쳐 전체 담론을 이끌어가는 주요 주제들을 말하며, 핵심관심사는 “깔때기”를 통해 물을 모아내듯이 다양한 이슈들이 회자되는 과정에서 궁극적으로 지칭되는 공통의 관심사를 말한다. 미국산 쇠고기 불매운동과 연결되어 있는 ‘소비자’ 키워드가 주요 토픽과 핵심 관심사에 꼽힌 것은, 대중들이 그만큼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불안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내 가족, 내 아이가 겪게 될 문제이기 때문이다.

반면 2013년 주요 키워드들 중에는 국정원 이슈와 NLL 대화록 이슈 등 정치적인 이슈들이 혼재되어 나타난다. 정치 고관여층에게는 관심을 끌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하루하루 살림 걱정하며 살아가고 있는 일반 서민들에게는 너무 멀리 있는 이야기들이다.

 

깨시민’을 깨고 나와 공감하고 학습하라, 그러면 응답할지니

과거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범 진보진영이 ‘산업화 담론’에 대항하기 위해 구축한 것은 일종의 ‘계몽담론’이었다. 먼저 공부한 지사들이 불쌍한 대중을 가르쳐(의식화),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있도록 깨우치는, 다시 말해 “앞서서 나가면 산 자가 따르는” 식이었다. 이러한 ‘계몽 담론’은 필연적으로 ‘계몽의 대상’과, ‘계몽의 적’을 상정하게 된다. 그들과 싸우기 위해서 범 진보진영은 권위주의 독재 체제의 유산인 ‘권위적 소통방식’을 내면화하였다. 투쟁의 대의를 설파하는 전위가 깃발을 들고, 대중을 계몽하며 전진을 외치는 이런 소통은 몇몇 파워트위터러들의 트윗만 봐도 자주 발견된다. 이를 비판하며 모 논객은 이들을 ‘깨시민(‘깨어있는 시민’ 혹은 ‘깨는 시민’의 준말)’이라 지칭하였다.

반면 지난 2012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 캠프는 매스미디어를 통한 일방적 메시지 전달 대신, 유권자들과 관련된 빅데이터를 철저히 분석하고, 이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정제하여 전달하는 ‘마이크로타게팅’ 기법을 활용해 큰 성공을 거뒀다.

교육수준의 향상과 소셜미디어의 대중화로, 이제는 누구든지 계몽의 선두에 설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굳이 현장에서 대화를 듣지 않더라도, 대중들은 트위터에, 페이스북에, 커뮤니티사이트에, 블로그에, 그리고 카카오톡에 메시지를 남긴다. 시대의 흐름과 사람들의 변화를 기민하게 학습하면서 공감할 때, 대중들은 응답할 것이다.

시사저널에 송고한 글 원문입니다. 기고문 링크는 아래에 :)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6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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