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정의 사회성 – 문명과 은유, 그리고 사회계약

최근에 EBS에서 “과학, 철학을 만나다”라는 엄청난 타이들의 강의를 방영했다.
과학도 어려운데 심지어 그런 과학이 철학을 만났다고 해서,
도대체 어떤 강의인지 궁금해 열심히 보기 시작했다.
장하석 케임브리지 석좌교수의 친절한 (그리고 약간은 어눌해보이는) 설명 덕분에,
매우 어려울 수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깊이 몰입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흥미로운 대목들이 꽤 많았으나,
그 중에 특히 3강 “자연의 수량화”가 눈에 들어왔다.
강의 일부가 이렇게 친절하게도 유투브에 공유되어 있다! (EBS 만세!)

 

측정은 은유다!

몇 가지 흥미로운 대목들을 공유해 보면,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들 생각하는
‘온도’라는 개념은
오랜 기간 동안 진행되어 온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다.

물이 얼어붙는다는 ‘섭씨 0도’는 어떻게 정의하나?
얼었을 때 항상 같은 점까지 올라온다면, 물이 같은 온도에서 언다는 식으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초냉각’ 현상도 있다. 순수한 물이 0도보다 낮음에도 불구하고 얼지 않는다.
그럴 때 불순물을 넣으면 갑자기 언다. (화씨(파렌하이트)가 1720년쯤에 발견.
섭씨처럼 빙점을 온도의 고정점으로 쓰는게 곤란해지면서 화씨(파렌하이트)가 생겼다.

온도계 고정점의 역사는 측정의 역사를 잘 보여준다.
과거에는 그럴듯한 고정점들이 많이 제안되었는데

  • 여름에 가장 더운 날씨와,
    겨울에 가장 추운 날씨를 고정점으로 하거나
  • 버터가 녹는 점을 높은점으로(끓는 점이 아니고!),
    깊은 지하실 온도를 낮은점으로 (제주도 만장굴 온도는 4계절 비슷)
  • 아이작 뉴튼은 혈온(blood heat)을 높은점으로,
    눈이 녹을때를 낮은점으로

이처럼 다양한 기준들이 제시되었기 때문에
과학자들이 온도계 고정점에 동의하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접하는 모든 것들은
소위 말하는 ‘비정형 데이터‘다.
쉽게 셀 수 없고, 쉽게 더하거나 뺄 수 없는,
다시 말해, “구조화되지 않은” 날것인 경우가 많다.

이 내용도 “과학, 철학을 말하다” 강의에서 언급된 적이 있는 내용인데,

“온도의 높고 낮음도 일종의 은유(metaphor)다”

높다와 낮다는 위치의 차이를 반영한 개념이다.
반면 온도가 높고 낮은 것은, 분자의 활성화 정도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이를 표현해주는 ‘온도계’가 없었다면,
혹은 온도계의 눈금이, 분자가 더 활성화된 상태를 아래로 표시했다면
온도가 낮다는 것의 의미와 높다는 것의 의미가 뒤바뀌었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하자면,
수량화된 값들 중 상당수가 이처럼
사회적 합의에 따라 만들어진 “은유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사과 한개 두개, 손가락 한개 두개, 이런건 물론 제외다)

실제로, 고대사회에 길이를 측정하는 단위들은
왕의 손가락, 왕의 발바닥, 왕의 팔꿈치와 손가락사이의 길이를 가지고 만들어졌다.

예를 들면

“이 돌은 왕 발바닥 10개만하다”

완벽한 은유다.

 

기준을 어떻게 통일할 것인가?

다만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

이전 왕의 발바닥 크기와, 현재 왕의 발바닥 크기가 다르다면? (당연하다)
우리나라 왕의 발바닥 크기와, 옆 나라 왕의 발바닥 크기가 다르다면? (매우 당연하다)

만약 갈릴레이의 ‘시간측정법’처럼, 맥박을 가지고 시간을 규정했다면
그리고 아마도,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왕의 맥박으로 규정되었을 텐데
왕이 차분할 때와 왕이 흥분했을 때의 시간 측정단위가 달라져버린다.

이처럼 기준이 불균질하고 불균등할때
어디서든 보편타당하게 적용될 수 있는
측정기준을 확립하려는 움직임들이 곳곳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매우 정치적인 행동이기도 하다.
진시황, 다리우스 등, 역대 통일제국의 제왕들은
도량형을 통일해, 균일한 측정도구를 제국 내에 강요했다.
측정은 통제를, 통제는 권력을 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힘 있는 자들끼리 열심히 싸우다 보면
결론이 안 난 채로 무엇 하나 제대로 측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인류는 이러한 상황을 잘 극복해 왔다.
이는 아마도 장하석 교수가 제시한
“관례주의(conventionalism)’적인 접근의 산물이 아닐까 한다.

간단히 설명하면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기준을 만들면
순환논리에 빠질 수밖에 없다.
예컨대, “신은 위대하다. 고로 위대하지 않은 일을 할 리 없다”라고 하면
이미 신이 위대하다고 해 버린 상황이므로, 무슨 말을 해도 앞의 대전제로 논리가 회귀한다.

이런 불가지론스러운 상황 속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옵션은

  1. 감각을 신뢰
  2. 연구를 통해 좀 더 나은 측정도구를 찾음
  3. 감각을 보완

있는 걸로 시작해서 시작하고,
더 나은 길이 나오면 원 기준을 수정하고 정제해서 반복한다.
물려받은 기준을 존중하는 것으로 시작하되,
절대적으로 복종하지는 않는다.

과학의 역사는 측정도구 발전의 역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 좋은 측정도구가 더 의미있는 결과를 뽑아내고
또 다른 측정대상과 도구를 정의한다.
그것이 새로운 개념, 사물, 서비스, 사회조직, 문화를 만들고
또 다른 측정대상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놓고 보면
측정의 역사는 곧
인류 문명 발전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왜 재는가?

여기서 좀 더 원초적인 질문으로 넘어가 본다.

우리는 왜 재는가?

장하석 교수 강의에서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아마도

건물을 짓고(길이),
잉여를 나누고(숫자),
특정한 시점(시간)에 약속하고
특정한 상태에서 가공하는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온도)

다시 말해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때문이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은 문명의 원천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성과 의지의 공유
문명과 문명 사이의 문화와 정보, 기술의 공유
세대와 세대 간의 노하우 전수
이 모든 과정이 없었다면 현대 문명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측정 자체가 문명이다.

 

그놈의 빅데이터…왜 수집해야 하지?

데이터분석을 하는 입장에서
특히 ‘빅데이터‘의 태반이 비정형데이터라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 모든 정형데이터가 비정형데이터이며
비정형 상태에서, 기존에 형성된 관념의 은유를 통해 정량화된다는 사실을 리마인드해준
장하석 교수의 강의는 한줄기 빛과 같았달까?

또 한가지.
문명이 고도화될수록
측정해야 할 대상은 늘어나 왔다.

그리고 측정대상이 단기간 동안 가장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시기가
바로 우리 시대가 아닐까 한다.

시간, 온도, 길이, 습도, 무게 등,
근대에 이르면서 비교적 간단히 은유화된 소위 ‘정형데이터’ 뿐 아니라

내 말 속의 긍/부정(감성분석)
내 맥박과 뇌파, 심전도, 피, 체성분
내 위치정보, 통화시간, 친소관계,
내 신용정보, 결제정보, 구매정보, 재방문율, 소비성향 등
각종 정보가 계측되고 분석되면서 나를 평가하는 시대가 되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합의”인 것 같다.
데이터는 모이긴 하는데,
그 데이터를 제대로 분석해서 잘 써먹는 경우는 흔치 않고
제대로 관리 못해서 여기저기 흘리고 다닐 뿐 아니라
데이터를 준 사람들이 누릴 뚜렷한 혜택도 별로 없다.

우리가 온도를 재고, 혈압을 재고, 피검사를 하는 이유는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다.
비교적 깔끔하고 명확한 목적이다.

반면에, 데이터 중심사회로 넘어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사람들이 왜 데이터를 모아야 하며, 그게 어떤 혜택을 줄지
입을 수 있는 피해를 어떻게 모면할 수 있을지에 대해
사회적으로 합의한 내용이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그런 시도가 있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빅데이터를 이야기하기 전에
왜 그것이 필요한지,
어디까지 측정해야 할지,
누가 데이터를 다루고, 누가 어떤 방식으로 관리할지,
관리가 잘 안되거나 오용되었을 때엔 어떻게 징벌할지에 대한
포괄적인 “사회계약“이 한번 더 체결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몇 년, 몇 십년, 아니 몇 세대가 걸릴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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