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자뻑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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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배설이다. 글쟁이는 배설구이다. 예쁜 글을 뽑아내려면 예쁜 배설구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배설구에서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배설물이다. 추잡하고 더럽다. 냄새도 난다. 때론 쓰(싸)는 이를 힘들게도 하고 아프게도 한다. 그렇지만 종국에는 쓰(싸)는 이에게 시원함을, 통쾌함을 준다.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배설’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법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면서, 내 머릿 속에서, 그리고 더 깊은 곳에 있는 내 맘속에서 떠 다니는 언어들을 길어 올리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고 신나는 일인지 알게 되었다. 이는 배설물의 냄새를 향기롭다 하는 것 만큼 변태적이고 가학적인 짓이기도 하지만, 기실 ‘나’라는 배설구가 얼마나 예쁘게 다듬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렇게 다듬어진 ‘나’라는 배설구를 통해 쏟아지는 ‘욕망’들이 어떻게 정제되고 정화되는지를 지켜보면서 느낄 수 있는 뿌듯함에서 기인한, ‘자기애’의 우회적 발현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옳을 듯하다.

내 언어가 나를 통해서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글쟁이 본연의 임무라면, 내 언어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 글쓰는 이가 스스로의 인격과 내공을 가다듬어야 한다는 것은 글쟁이의 당연한 의무가 된다.

하지만 그 의무는 사실 ‘병역의 의무’처럼 어떤 종류의 ‘중압감’에 시달리면서 수행해야 할 고행은 아니다. 물론 그것이 고행의 요소를 다분히 품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요컨대, ‘가다듬’는 다는 것은 ‘깎아내’는 것이고, 그래서 ‘아프고’ 또 ‘부끄러운’ 작업일 테니까.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 ‘부끄러움’조차도 즐거움의 영역에 조용히 편입된다. 그것을 부끄러워할 수 있는 스스로에 대해 대견함을 느끼면서, 그렇게 스스로를 칭찬하고 격려하게 되면서, 부끄러운 것을 부끄럽다 일컬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을 몸서리치게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다.

글쟁이는 그래서 ‘자뻑’을 즐기게 된다. 그들은 한 문장을 길어내고 전율하며, 한 단어를 끌어내고 환호한다.

그리하여

만약에 ‘글’이 ‘정화’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한다면, 그 동력은 글쟁이의 그 무수한 ‘자뻑’들에서 말미암게 되는 것이다.

더럽고 부끄러운 것을 더럽고 부끄럽다고 얘기할 수 있는, 그리고 그것들을 덤덤하게 쏟아내면서 한 단어에, 한 문장에, 한 문단에, 그리고 한 글에 아름답게 녹여낼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해 가면서, 글쟁이는 스스로의 역량과 깜냥을 키워 나가게 되고 더 아름다운 언어를 쏟아낼 수 있게 된다. 시간이 더해 갈수록 언어의 향연은 깊어만 가고, 암향(暗香)은 은은히 퍼져나가 천하를 덮을 만큼 농란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내 안에만 맴도는 나의 ‘자뻑’을 사랑한다. 그것이 나와 나의 언어들을 정화시킬 것이기에. 그리고 키울 것이기에.

 

2006. 12. 21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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