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HER)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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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한 영화 ‘그녀(Her)’가 입소문을 타면서 흥행하고 있는 모양이다. 실연을 당해 외로운 한 남자와 최신 컴퓨터 운영체계(OS) 사만사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인간의 피조물인 컴퓨터가 스스로 인격을 재구성할 수 있고, 심지어는 인간과 사랑에 빠질 수 있다? 피조물인 인간들과 사랑에 빠지는 무적의 신 제우스를 연상시키면서도, 한편으로는 로봇에게 소외될 지 모른다는 오랜 공포를 되새김질하게 한다.

로봇과 인간의 대립은 20세기 문화예술 작품들의 단골 소재였다. 나쁜 의도를 가진 어떤 세력이 막강한 파괴력을 갖춘 로봇을 만들고, 그 반대편에 있는 ‘착한’ 로봇이 이들을 무찌르는 내용들이다. ‘터미네이터’ ‘아톰’, ‘마징가Z’, ‘태권V’는 물론이고, ‘블레이드러너’나 혹은 인간의 인격과 융합한 로봇을 다룬 ‘에반게리온’ 같은 작품에서도 로봇은 파괴 행위의 주체이고 인간의 의지와 통제를 벗어날 수 있는 무서운 존재다. 세계적인 SF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들 속에서, 인격을 갖춘 로봇은 인간의 실존 자체를 위협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다만 현재까지 구현된 것들만 보면, 로봇의 인격은 오히려 ‘아이로봇’이나 ‘바이센티니얼맨’, 혹은 ‘스타워즈’의 R2처럼 인간을 보조하는 쪽에 국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직접 소개하면서 화제를 끈 인간형 로봇 ‘페퍼(Pepper)’는 감정 엔진을 통해 인간의 감정 상태를 포착하고, 외부 정보를 학습해 클라우드 환경에 연결된 다른 로봇들과도 공유한다. 페퍼는 인간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학습한다. 외형을 갖춘 것만 빼면, 영화 ‘그녀’ 속 사만사와 판박이다.

업계는 사물인터넷을 화두로 하여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얼마 전 열린 구글 개발자 컨퍼런스(Google I/O)에서 공개된 ‘안드로이드 오토’는 자동차 용이고, ‘안드로이드 웨어’는 갤럭시기어나 심밴드와 같은 웨어러블 기기용 안드로이드다. 이는 사용자와 맞물린 다양한 상황을 파악하는 ‘상황인지(context awareness)’ 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구글이 무료 배포중인 운영체계(OS)의 이름은 심지어 ‘안드로이드(Android)’ 즉 인조인간이다.

로봇이 인간의 생활 맥락 속으로 더욱 깊숙하게 파고드는 상황인지 능력은 ‘딥러닝(Deep learning)’ 등의 인공지능 분석과 맞물려 더욱 더 강화되는 추세다.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 기술을 활용하면 맥박이나 체온, 위치, 혈압, 심지어는 인간의 감정 상태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 필자가 즐겨 사용하는 사물인터넷 기기 ‘조본’은 사용자가 몇 걸음을 걷고 몇 칼로리를 소모했는지, 잠은 푹 잤는지를 누적적으로 기록하고 정리해 주는 기기다. 소셜분석에서 자주 활용되는 ‘감성분석’ 기술은, 텍스트 속에서 언급되는 키워드의 긍/부정 여부를 자동으로 판별한다.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애플의 음성인식 서비스 ‘시리(Siri)’, 삼성의 ‘S보이스’, LG의 ‘Q보이스’ 등이 이러한 텍스트 분석 기술이나 웨어러블 기기가 수집한 각종 데이터와 융합되면 영화 ‘그녀’ 속 사만사가 완성되는 것이다.

물론 아직 기술적으로 넘어야 할 벽은 많이 남아있다. 특히, 다양한 이종데이터의 융합 및 분석처리를 정확하고 원활하게 수행하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들이 계속되는 한편에서는, 조만간 가상의 인격과 사랑에 빠질 수도 있는 시대의 도덕과 윤리, 그리고 정치체계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로봇을 매개로 개인의 신상정보와 신체정보, 감정상태와 지식 등이 모두 융합되면서 개인들이 집단에 모조리 녹아버리는, 만화 ‘에반게리온’ 속 ‘인류보완계획’과 같은 디스토피아가 현실화될지도 모른다.

시사주간지 시사인에 송고한 글 원문입니다. 기고문 링크는 아래에 :)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0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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