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하이쿠, 짤방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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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둔 4월 15일, 모 비타민 음료 상자와 이완구 당시 총리를 합성한 다양한 이미지, 소위 ‘짤’들이 소셜 공간을 뒤덮었다.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이완구 전 총리에게 3천만원을 건넬 때 비타민 음료 상자를 사용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온 직후였다. 버즈량을 확인해 보니, 이완구 전 총리 관련 버즈가 하루 약 43,000건으로, 세월호 언급량 약 42,000건을 넘어서 있었다. 모 비타민 음료 관련 버즈량은 평소 대비 약 44배가량 치솟았다.

이처럼 일반인들을 중심으로 편집되어 유통되는 이미지들을 ‘짤방(짤림 방지)’ 혹은 ‘짤’이라고 한다. 짤방은 인기 커뮤니티사이트인 디씨인사이드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원래 디지털 카메라 전문 사이트던 디씨인사이드가 유명 커뮤니티로 인기를 끌게 되면서 당초 사진 공유 목적으로 만들어진 갤러리 게시판에 사진 없이 글이 올라오는 경우가 많이 생겼고, 게시판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글들이라고 판단한 운영자가 사진 없는 글들을 삭제하자 이를 피하기 위해 ‘짤림 방지’용 이미지들을 함께 올리기 시작한 데서 유래했다. 2000년대 초반 개벽이, 개죽이, 장승업 등 다양한 이미지들이 히트친 이래, 짤방은 인터넷 공간에서 필수적인 소통 수단 중 하나가 되었다.

짤방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콘텐츠 형태다. 해외에도 짤방과 유사한 개념의 ‘밈(meme)’이 널리 활용되고 있다. 과거 강남스타일의 세계적인 히트 뒤에는,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장면을 활용한 다양한 ‘밈’, 즉 짤방의 확대 재생산이 있었다.

짤방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가장 큰 특징은 일본의 전통시 ‘하이쿠(俳句)’처럼, 짧고 함축적인 메시지로 상황을 요약한다. 일례로 최근 모 예능 프로에서 선배 방송인 이태임과 갈등을 빚어 논란이 되었던 예원의 경우, 앉아서 위를 노려보며 “언니 저 맘에 안 들죠?”라고 말하는 장면이 ‘짤’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관련 기사나 동영상, 게시글들도 많이 있지만, 그 어떤 장황한 설명보다도 이 짤 한 장이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을 짧고 포괄적으로 요약해 준다.

둘째로 짤방은 이미지만으로 구성되는 경우보다 텍스트나 캡션과 함께 붙어있는 경우가 많다. 이미지만 있으면 설명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짤방으로 활용되는 주요 소재들은 애니메이션이나 웹툰, 예능프로그램 캡쳐 화면 등, 텍스트가 붙기 좋은 이미지인 경우가 많다. 적절한 이미지와 적절한 텍스트가 만나면 전혀 색다른 맥락으로 재해석되기도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해경 해체” 발언 장면이 대표적이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이슈마다 재 등장하는 이 짤은, “고민 끝에 ~~을 해체하기로…” 로 마무리되곤 한다.

한편 짤방에는 너무 많은 메시지가 담기면 안 된다. 짤방이 많이 활용되려면, 다양한 맥락에서 두루 통용될 수 있어야 한다. 짤방에 너무 많은 메시지가 담겨서, 다양한 상황맥락에 응용할 수 없다면 널리 쓰이지 못하고 사장되기 쉽다. 그래서인지 최근 유행하고 있는 ‘개노답(답 안 나오는) 삼형제’ 시리즈는 말 풍선 부분이 비어 있어, 편집자가 원하는 메시지를 써 넣을 수 있다. 덕분에 직장인 개노답 삼형제, 명절 개노답 삼형제, 소개팅 개노답 삼형제 등, 다양한 편집본들이 생산되고 인기리에 유통되고 있다.

참신한 짤을 생산하고 활용하는 것은 온라인 공간에서 내가 얼마나 쿨하고 센스 있는 사람인지를 과시하는 일종의 인정투쟁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드립력’, 다시 말해 센스 있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짤을 적재 적소에 절묘하게 활용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좋은 짤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이들이 남긴 좋은 짤방들을 수집하는 ‘짤줍(짤방 줍기)’은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꽤 오래된 트렌드다.

때문에 온라인 공간에서 더 많은 열성팬을 확보하고자 하는 기업 계정들은 ‘짤’ 활용방법에 대해 관심이 많다.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브랜드라면 더욱 그렇다. 더욱 트랜디해 보일 수 있고, 쿨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몇몇 발 빠른 계정들은 뜨는 짤을 브랜드 계정에서 활용하기도 하고, 브랜드 메시지를 담은 짤방을 만들어 게재하기도 한다.

하지만, ‘짤’이 활용되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 따라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가할 수도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일례로 이완구 총리와 모 비타민 음료를 합성한 짤들이 소셜 공간을 뒤덮자, 모 경쟁회사 소셜계정에서 이를 패러디 하는 짤을 올렸다가 논란 끝에 황급히 내리기도 했다.

이미지로 재구성된 디지털 시대의 ‘하이쿠’인 짤방은, 짧고 강력하게 시대의 흐름과 대중의 관심사를 대변해주는 자료다. 짤방을 모으는 것은 어쩌면 그 속에 담긴 우리 시대의 나이테를 수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지금부터라도 ‘짤줍’을 시작하시길 권한다.

시사주간지 시사인에 송고한 글 원문입니다. 기고문 링크는 아래에 :)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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