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극복하라. 창조적으로

서애 류성룡을 모신 병산서원. 강당인 입교당에서 바라본 만교당. 산세와 강, 나무의 흐름에 맞춰 지어져 있다. 자연을 범하지 않고 순응하면서, 앞뒤옆의 자연을 끌어들이는 '차경(借景)'으로 아름다움을 더한다. 편안하고, 무엇보다 시원하다. 수많은 조선 건축물 중 조선적 주체의 이상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건축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을 모신 병산서원(屛山書院)의 강당인 입교당(立敎堂)에서 바라본 만대루(晩對樓). 산세와 강, 나무의 흐름에 맞춰 지어져 있다. 자연을 범하지 않고 순응하면서, 앞뒤옆의 자연을 끌어들이는 ‘차경(借景)’으로 아름다움을 더한다. 편안하고, 무엇보다 시원하다. 수많은 조선 건축물 중 조선적 주체의 이상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건축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시대로 조선시대를 꼽는다. 영토는 고구려만 못했고, 경제적인 화려함은 고려만 못했으나, 문명의 품격은 세계사를 뒤져봐도 유례가 없을 만큼 고결하고 숭고했던 것이 조선이다.

특히 조선의 파운딩 파더(founding fathers)들이 설계한 조선의 성리학적 “주체”는 600년동안 도덕적, 지적 리더십을 정점으로 한 정치, 경제, 사회 거버넌스의 근간이 되어왔다. 도덕적 솔선과 공동체를 위한 헌신, 물질적인 검약과 절제가 최고의 미덕이었다. 사리사욕의 추구는 터부시되었고, 연장자나 지적, 도덕적 권위를 가진 이들에 대한 존중을 통해 혼란 없는 대동사회를 추구했다.

창경궁 문정전(文政殿) 앞에 적혀 있던 어전회의(지금의 국무회의) 관련 소개글이 인상깊었다. 이 안내판에는 조선의 정책 결정과정에 대해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간단히 요약하면, 사관제도를 통해 군신의 언행을 모조리 기록해 신중하게 의사결정하게 했고, 면책특권을 가진 삼사 언관들을 통해 어전회의 결정에 대해 견제하게 했다는 내용이다. 당대에 조선을 제외한 세계 어느 문명에서도 국가 운영과정에 이러한 견제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창경궁 문정전(文政殿) 앞에 적혀 있던 어전회의(지금의 국무회의) 관련 소개글이 인상깊었다. 이 안내판에는 조선의 정책 결정과정에 대해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간단히 요약하면, 사관제도를 통해 군신의 언행을 모조리 기록해 신중하게 의사결정하게 했고, 면책특권을 가진 삼사 언관들을 통해 어전회의 결정에 대해 견제하게 했다는 내용이다. 당대에 조선을 제외한 세계 어느 문명에서도 국가 운영과정에 이러한 견제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비판과 견제를 놓지는 않았다. 언관제도, 의정부서사제, 경연제도는 현대 민주주의에 비견할 만하다. 실록을 중심으로 한 철저하고 치밀한 기록문화를 통한 견제시스템은 가장 왕권이 강했다는 연산군조차도 몰락시킬만큼 강력했다. 공법(貢法, 세금)제도에 대해 10년간 17만명의 일반 백성들에게 피드백을 받았던 문명이 있었던가?

대한민국의 리더들, 특히 이승만과 박정희는 각각 서구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전통적 주체를 결합시켰다. 북쪽의 김일성은 공산주의를 접목했을 뿐 근간은 동일하다. 그리고 각각의 체제는 기적적으로 엄청난 포텐을 터뜨리며 각각 세계사 속에서 의미있는 족적을 남겼다. (좋든 나쁘든)

문제는 정치제도가 민주주의로 바뀌고,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올바른 판단력과 양식을 갖춘 “시민”적 주체가 조선 이래 내려오고있는 성리학적 주체와 충돌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적, 도덕적 우위를 가진 선비가 아랫사람들을 “교화”해야 하고, 교화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국가가 제시하는(과거제도와 고시) 전통은 능동적인 서구적 시민 주체와 충돌하면서 권위주의적 인성을 강화시키고 있다.

더 심각한 건 산업화 때에는 그나마 이런 부조리가 생산력에 악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는데, 창의와 혁신이 강조되는 후기산업화사회엔 잠재성장력을 갉아먹는 암세포가 되어버렸다는 것. 상명하복, 경직된 소통, 관료적 마인드는 파괴적 혁신이 일상화된 21세기 경제전쟁에서 패배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다.

돈 한 푼 더 버는게, 혹은 제2의 싸이나 김연아, 갤럭시 시리즈를 만드는게 중요한게 아니다. 600년 된 지적, 도덕적 전통을 토대로 21세기형 주체를 다시 구축해야 한다. 새로운 “시민”이 경제적으로 더 부유하고 문화적으로 더 멋져보일 수 있는, 그래서 미래세대가 그렇게 자라나고 싶을 수 있게 하는 인센티브 설계가 먼저다. 다양한 삶의 방식이 용인되어야 한다. 역사와 전통에 대한 자신감을 토대로 세계를 누빌 수 있는 글로벌 시민을 길러내야 한다.

600년 된 주체를 재구축하는 작업이 간단할 리 없다. 적어도 반 백년 이상 걸릴 장구한 문화전쟁이다. 긴 호흡을 가지고 준비하고 연대해 나가야 한다. 혼란스럽지만, 곳곳에서 맹아가 보인다. 희망은 있다. 반만년 된 문명의 저력이 어디 갈 리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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