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적 혁신의 시대, 협력 만이 살 길이다

업계의 많은 사람들이 전략컨설팅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 M사, B사 등 업계를 주도하고 있는 회사들조차도 컨설팅 수요 하락에 따른 경쟁 심화로 프로젝트 단가를 낮추고 있다. 시장에 대해 더 잘 아는 영리한 현업들을 상대하기에 컨설턴트들의 업계 경험이 부족한 까닭도 있고, 업계에서 두루 회자되는 몇몇 큰 실패사례로 인해 명성이 하락한 탓도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가 전략컨설팅 업계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전세계에 걸쳐 뻗어있는 비즈니스 네트워크의 복잡성 증대로 인해 분석과 예측, 자문을 하기에 버거울 정도로 비즈니스 환경이 너무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시대는 과거와 불연속적인 급격한 변화가 연속되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의 시대다.

전략컨설팅 산업과 비슷한 맥락에서, 아카데미의 권위도 위협받고 있다. 비즈니스 현장보다 훨씬 더 느린 현상 파악과 대응 때문이다. 이미 공공부문이나 기업에서는 권위 있는 교수들보다 관련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기업들에게 프로젝트를 맡기는 경우가 많다. 성과물에 대한 누적된 실망 때문이다. 이처럼 전통적으로 ‘전문가’로 여겨지는 직종들은 빠른 변화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탄탄한 분석력에 기반한 ‘예측력’의 권위를 상실할 위험에 처해 있다. 엄청난 양의(volume) 다양한(variety) 데이터가 빠른 속도로(velocity) 쏟아지는 빅데이터의 대두로 이러한 추세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각 분야의 전문성이 도전 받고 있는 우리 시대, 전문가들이 ‘권위’를 지킬 수 있게 하는 핵심 요소는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한 ‘무기’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을 필요로 하는 각 분야에서 현장 경험을 갖춘 현업들보다 더 나은 인사이트를 뽑아내기 위해서다. 시장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설문조사와 통계방법론을 섭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객의 욕구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모바일과 소셜에서의 피드백도 두루 파악해야 한다. 비정형 텍스트데이터 분석을 통해 심층 니즈를 발굴할 수도 있지만, 클릭율이나 재방문율, 구매전환율 등 다양한 정형데이터 속에서 통찰을 발굴해야 한다. 때로는 인문사회적 시각으로, 때로는 수리적 사고로, 때로는 디자인적인 관점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재무제표 속에서, 때로는 전문 리포트와 논문들 속에서, 때로는 쏟아지는 빅데이터 속에서 새로운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는 양수겸장(ambidextrous)의 도구들을 두루 갖춰야 한다.

어느 한 사람의 전문가가 모든 분석역량을 다 갖출 수 없다면, 전문가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서로의 통찰을 주고받을 수 있는 ‘통섭’의 장을 마련해 능동적인 상호침투를 가속화시켜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내 것’이라는 아집과 오만 대신, 협력 파트너의 전문성에 대한 존중과 인정, 그리고 소통 의지를 갖추는 것이다. 새로운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과거 경험에 매몰되지 않고 유연하게 가설을 수정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두고 시장과 대중이 검증하게 하는 ‘소셜지능(social intelligence)’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지식이 어느 한 곳에 쌓이고, 그것이 권위가 되는 시대는 파괴적 혁신의 빅데이터 시대로 점차 대체되고 있다. 자신의 전문분야에 매몰되지 않고 끊임 없이 배우고, 다른 전문가와 소통하며, 대중의 반응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빅데이터 수집 도구를 활용하는 겸손한 전문가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시사주간지 시사인에 송고한 글 원문입니다. 기고문 링크는 아래에 :)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8500

소셜 세계는 평평한가? 기울어진 소셜 공간에서 존재감을 확보하는 법

금주 시사인 기고문 링크가 풀렸네요.
앞으로 블로그상에, 편집 과정에서 날라간 부분들까지 포함한 원본 링크도 함께 공유해볼까 합니다.

원본 링크는 여기에…

SNS가 평등하다는 착각을 버려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8171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등의 저서로 유명한 토머스 프리드만의 책 ‘세계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는 매우 논쟁적인 주장을 담고 있다. 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된 세계화와 정보화로 인해, 낙후되어 있던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되었고, 인도가 IT강국으로 급부상하는 등, 국력이 약한 나라들이 강대국들에 비해 보다 분명한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면서 전 세계가 “평평해” 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 상에 엄존하는 군사력, 경제력, 사회문화적 역량 차이가 사라진다는 듯한 그의 주장은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관점으로 반박되었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가 처음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던 몇 년 전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소셜 공간이 얼마나 민주적이고 평등한 공간인지, 그리고 이러한 속성들로 인해 만들어갈 수 있는 ‘더 좋은 세상’에 대해 열렬히 설파했다. 세계 반대편에서 일어났던 아랍권의 자스민 혁명을 이야기했고, 강정과 희망버스, 그리고 정권교체를 이야기했다. 그들이 바라본 소셜 공간은 토머스 프리드먼이 바라본 세계만큼이나 평평한 곳이었다. 하지만 필자가 트리움 이사로 재직하면서 최근 몇 년간 국내외 유수의 기업들과 여러 기관들의 의뢰로 진행한 다양한 소셜미디어 분석 컨설팅 결과들을 뜯어보면, 소셜미디어는 반드시 평평하다고만 할 수 없다.

소셜 상의 이슈 형성 및 확산은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가 ‘봉건형 확산(feudal diffusion)’이다. 이 경우에는 이슈를 주도하는 영향력자(influencer)가 의제를 설정하고, 영향력자와 관계를 맺고 있는 하위 영향력자나 일반인들이 이를 확대 재생산한다. 의제 설정 과정에서 하위 영향력자나 일반인들의 이슈 제기가 영향을 다소 미치기는 하나, 영향력자의 승인, 즉 RT나 공유를 통한 재확산 기회를 얻지 못하면 곧바로 사그러진다. 군주의 하위에 다수의 영주가, 그 밑에 다수의 기사들이, 위계의 최 하단에는 농노들이 위치했던 중세 유럽 봉건제를 연상시킨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연예인 팬덤이다. 아이돌 스타가 소셜 계정에 글을 올리면 해당 스타의 팬클럽 계정이나 소속사 계정, 혹은 연예관련 매체 계정이 1차 확산하고, 이를 일반 팬들이 2차 확산시킨다. 작년 총선 대선 때 여야의 주요 논객들이 이슈를 생산하고 소비했던 것도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이러한 하위 영향력자들을 충분히 거느리지 못한 대부분의 기업계정들이 올리는 콘텐츠들은 ‘봉건형’ 확산 패턴을 띠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팬 구성 자체가 이벤트 당첨을 노린 체리피커(cherry picker) 위주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유유상종형(homophily)’이다. 평소에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가, 특정한 이슈가 터지거나 관심을 끌만한 공감거리가 생기면 갑작스럽게 관계망이 형성되면서 이슈가 확산된다. 동일본 대지진이나 강남역 침수 등 사건 사고 현장 사진이나, ‘레밀리터리블(레미제라블 패러디)’이나 ‘진격의 콜라(애니매이션 ‘진격의 거인’ 오프닝 패러디)’ 등 기존 콘텐츠들을 토대로 하여 ‘쓸고퀄(쓸데없이 고 퀄리티, 매우 잘 만든 콘텐츠를 뜻함)’로 만들어지는 패러디 영상들이 대표적이다.

대중의 관심사와 가장 잇닿아 있는 파격적이고 강력한 콘텐츠를 가지고 있다면, 팔로워 수나 친구 수가 100명 이하인 일반인들도 이때는 소셜 공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신뢰의 원천이 유명인의 명성이나 권위 대신, 이슈에 얼마나 적합한지, 그리고 사건을 얼마나 잘 설명해주는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강남스타일’의 세계적인 히트는 전반부의 ‘봉건형’과 후반부의 ‘유유상종형’ 이슈 소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초반에는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위계화된 K-Pop 팬덤이 ‘봉건형’으로 이슈를 소비하는 동시에 매스미디어 보도 등을 통해 세계 각지의 유명인들을 끌어들이며 확산의 폭을 넓혀갔다면, 후반부에는 ‘강남스타일’ 콘텐츠에 공감하는 전세계의 일반인들이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유유상종형’ 확산 패러디물을 만들어내면서 전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봉건형’ 확산과 ‘유유상종형’ 확산이 주를 이루는 소셜 공간은 평평하지 않은 공간이다. ‘봉건형’은 물론이고, ‘유유상종형’ 확산을 이뤄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기술과 센스가 불균등하게 분배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유유상종형’ 확산을 통해 팬을 확보한 일반인은 결과적으로 또 다른 ‘봉건형’ 확산과정의 주역이 된다.

이처럼 소셜 공간은 끊임없이 ‘권위’가 재창출되면서 위계적인 본질을 유지한다. 때문에 기업이나 기관, 개인은 ‘평평한’ 소셜을 가정하고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면 안 된다. 그대신 유력자와 이들을 정점으로 구성된 소셜 역학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들을 동조자로 포섭하기 위한 메시지 전략을 면밀히 수립해야 하며, 한편으로는 대중들이 ‘유유상종형’으로 소비하는 핫이슈가 무엇인지 주목하고 이에 기민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